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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 정보 & 초중고 기출)

장영실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파악하며 읽어보기)

by llolloolloll 2023.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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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이렇게 된 것도 고칠 수 있겠느냐?"

 

한 남자가 손잡이가 부러진 삽을 내밀었다.

 

아이는 꼼꼼히 살펴보더니 막대기를 가져와 손질했다.

 

그리고 그것을 삽에 고정시켜서 새 손잡이를 만들었다.

 

"이런, 감쪽같이 고쳤네. 네 재주는 어른도 못 따라가겠구나, 허허허....."

 

이 아이는 무엇을 고치거나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주변에 있는 나무 조각이나 돌멩이 등으로 여러 가지 장난감을 만들기도 했고, 

 

나무토막을 자른 뒤 다듬어서 팽이를 만들기도 했다.

 

이 아이가 만든 팽이는 중심을 잘 잡아서 오랫동안 쓰러지지 않았다.

 

무엇이든 잘 고치고 잘 만드는 아이에 대한 소문은 온 동네에 퍼졌다.

 

사람들은 손재주가 있는 똑똑한 아이라며 칭찬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양반집에서 태어났다면 장차 커서 큰 인물이 될 텐데..."

 

이 아이가 바로 조선 시대 최고의 과학자인 장영실이다.

 

장영실은 조선 시대에 천한 신분인 기생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에는 신분 차별이 심해서 장영실처럼 출생이 천한 사람은 재주가 있어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머리가 좋고 손재주가 뛰어난 장영실에 대한 소문은 궁까지 전해졌고, 마침내 장영실은 궁에서 기술자로 일하게 되었다.

 

장영실의 뛰어난 능력은 궁 안에서도 점차 인정을 받게 되었다.

 

세종은 과학 기술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천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과학자들에게 천문 관측 기구에 대한 연구를 하게 하였다.

 

그중에는 장영실도 있었다.

 

"천한 신분이면 어떠한가? 기술이 이렇게 뛰어나니, 장차 나라의 큰 일꾼으로 삼아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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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에 대한 세종의 관심과 사랑은 남달랐다.

 

세종은 천문 관측 기구들을 연구해 오라고 장영실을 중국에 유학 보냈다.

 

당시 천문학은 농사를 짓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정보를 주는 매우 중요한 학문이었다.

 

그렇게 때문에 중국에서는 천문관측 기구들에 대한 책을 보며 연구를 계속했다.

 

장영실은 중국에서 돌아와, 그동안 보고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기구들을 만들었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장영실은 천한 신분에서 벗어나고, 관직에도 오르게 되었다.

 

그 뒤로도 장영실은 천문 관측 기구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여 훗날 중국의 것보다 훨씬 뛰어난 강의를 만들었다.

 

"농사가 잘되어야 나라가 풍요롭다. 그러려면 물을 잘 다스려야 하느니라."

 

세종은 농사짓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장영실에게 농사에 도움을 줄 수 있는기구를 만들라고 했다.

 

'비가 언제, 얼마나 내렸는지를 정확하게 알면 홍수나 가뭄에 대비할 수 있을 거야.'

 

이렇게 생각한 장영실은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발명했다.

 

측우기는 비의 양을 재는 기구로, 원통형 그릇에 눈금이 있어 비가 얼마나 내렸는지를 측정할 수 있었다.

 

그는 측우기로 어느 계절에 비나 눈이 많이 내리는지 또는 적게 내리는지 조사했다.

 

또 어느 지역에 비가 많이 내리고, 눈이 많이 오는지도 자세하게 조사해서 백성들의 농사일에 도움을 주었다.

 

또한 장영실은 강이나 냇물에 눈금을 새긴 쇠기둥이나 돌기둥을 세워 물 깊이를 재는 '수표'를 만들었다. 

 

이 수표를 강에 설치하여 장마 때 강물이 넘치는 것에 대비할 수 있었다.

 

측우기와 수표는 홍수나 가뭄 때문에 생기는 농사의 피해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장영실이 만든 기구가 백성들이 과학적으로 농사를 짓는 데 도움을 준 것이다.

 

이 밖에도 장영실은 많은 기구들을 발명 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물시계인 '자격루', 해시계인 '앙부일구', 휴대용 해시계인 '현주일구' 등도 만들었다.

 

또한 금속 활자인 '갑인자'를 만들어서 우리나라의 인쇄술을 발전시켰다.

 

장영실은 비록 천한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관직에 오른 데에는 신분보다는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한 세종의 역할이 컸다.

 

세종은 장영실이 마음껏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장영실은 백성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는 여러 가지 기구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양반도 아닌 장영실에게 관직을 주는 것을 반대하는 관리들도 많았지만, 

 

그가 만든 많은 기구들이 나라와 백성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은 다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최선을 다한 과학자, 장영실.

 

그의 꾸준한 노력과 과학 기술에 대한 열정은 그를 조선 최고의 과학자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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