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시대 공무원이 되려면 왜 논술을 잘해야 했을까?
- 조선시대에도 관리가 되기 위한 시험인 '과거 시험'에 합격하려면 보통 30년 이상 공부를 해야 했다.
- 책문이란, 지금의 논술 시험과 비슷하다. 임금이 나랏일에 관한 질문을 던지면, 시험 응시생이 이에 대해 논리적으로 답변한다.
- 과거 시험 합격자는 선배들에게 후배 되기를 허락받는 예비 신고식인 허 참례와 정신 신고식인 면신례를 치러야 했다.
2. 왜 백성들은 신문고를 치지 않았을까?
- 억울한 일이 있을 때 백성들이 임금에게 직접 억울한 사정을 알릴 수 있도록, 북을 달아 놓자는 것이었다.
- 신문고를 (제도) 만들기 바로 전에 조선 정부는 금 부민 고소라는 법을 만들었다.
이 법은 일반 백성들이 어떤 경우에도 수령을 고소할 수 없게 하는 법이다.
- 격쟁이란, 징과 북을 치면서 궁궐 안으로 들어오거나, 임금이 행차하는 틈을 엿보아 떼를 지어 몰려가 징과 북을 쳐 대는 것을 말한다.
3. 왕의 호칭은 왜 그때그때 다를까?
- 조선 왕조를 건국한 태조
아버지의 대를 이은 세종
왕의 자리에서 쫓겨난 연산군
- 전하의 전자는 대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하자는 아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 묘호는 왕의 재위 시 행적에 대한 평가인 동시에 추모의 뜻을 담고 있다.
- 임금 중에는 조와 종이 아니라 군으로 불린 경우도 있다. 이들은 왕위에는 올랐지만, 반정에 의해 왕의 자리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왕으로 인정받지 못해 묘호를 받지 못하였다.
4. 왜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높을까?
- 동쪽은 해가 하늘로 떠오르는 방향이다. 그래서 하늘의 기운, 양의 성질을 갖는다. 반면 서쪽은 해가 땅속으로 지는 방향으로 명의 기운인 음의 성질을 가진다.
- 항상 동쪽은 왼쪽, 서쪽은 오른쪽
- 우리 조상들은 왼쪽이 높고, 오른쪽이 낮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높은 지위였다.
- 임금은 가장 신임하는 신하를 오른쪽에, 그다음 신임하는 신하를 왼쪽에 자리 잡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임금이 아닌 신하들의 자리에서 볼 때, 더 신임하는 신하가 왼쪽에 있는 것으로 본다.
- 영의정은 오늘날의 국무총리 정도의 위치
- 좌의정은 오늘날로 치면 외교부 장관 겸 국방부 장관
- 우의정은 오늘날 내무부 장관 겸 법무부 장관
5. 옛날 무덤의 이름은 왜 모두 다를까?
- 고분마다 다른 명칭이 붙는 비밀은 바로 무덤 주인의 신분 차이에 있다.
- 우선 무덤 속에서 어떤 유물이 출토되었는지 따져 본다. 그래서 출토된 유물 중 특이한 것이 있으면 그 유물의 특징을 따고 그 뒤에 총이라는 명칭을 붙인다.
- 유물마저 발굴되지 않은 무덤들도 있다. 이런 무덤들은 뭉뚱그려 분이라고 부른다.
6. 종묘 정전은 왜 길게 지어졌을까?
- 종묘는 조선시대 역대 임금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던 왕실의 사당이다.
- 조선의 임금이 선왕인 돌아가신 아버지와 할아버지 더 윗대 할아버지들과 그 왕비들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 정전을 점점 길게 만들면서 조상님 모실 공간을 확보한 것이다. 그래서 종묘 정전이 길어지게 된다.
- 종묘의 문화재적 가치와 더불어 이런 신비한 매력 덕분에 종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있다.
7. 암행어사 제도, 왜 무용지물이었을까?
- 암행어사는 참신하고 패기에 찬 젊은 문관이어야 했고, 당하관으로 고관이 아니어야 했고, 암행어사가 돌아볼 수령들과 연줄이 닿지 않아야 했다.
* 궁궐 속 건물 이름
- 가장 높은 건물 전
- 전 바로 아대 당
- 왕실 가족이나 궁궐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쓰는 재와 헌
- 마루로 되어 있는 누
- 휴식하는 곳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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